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2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저성장 국면이 길어지더라도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통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추경 만성화’를 우려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12조 2000억 원 규모의 필수 추경은 신속 집행하되, 추가 추경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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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은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이 -0.2%로 집계됐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의 충격은 컸다.
지난해 2분기(-0.2%) 역성장 이후 불과 세 분기 만에 다시 후퇴하면서 올해 연간 경제 성장률도 한은이 애초 예상한 1.5%보다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건설·설비투자와 민간소비 등 최악의 내수 부진이 1분기 성장률을 크게 깎아 먹었다.
허 교수는 “지난해 3분기부터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됐다”면서 “반도체 이후 고부가가치산업은 보이지 않았으며, 고령화 문제는 너무 빠르게 진행되며 중장기적인 모멘텀을 찾기 어려워지는 등 한국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타날 때 쯤 비상계엄 사태까지 터지며 1분기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허 교수는 “건설 경기는 수주액, 기성액 등 전 부문이 부진한데다 구성 요소를 뜯어봐도 결국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수도권은 그나마 버티고 있으나 지방 부동산은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른다. 정책적으로 큰 처방이 없으면 당분간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나마 우리 경제 성장 동력인 수출은 1분기에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평가됐으나, 이미 중소 수출기업 사이에선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에 존폐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는 게 허 교수의 설명이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가 수출 규모로 보면 대기업이 많지만 수출 기업 수로 따지면 90%가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라면서 “대기업은 아직은 대응 여력이 있으나 정보망이나 대응책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받을 타격은 상상 이상”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추경 편성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지원 항목별 예산의 규모를 재조정하거나 확충해 더 적극적으로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미 기업들의 관세 관련 상담은 폭주하고 있다. 범부처 비상수출대책 일환으로 운영 중인 ‘관세 대응 119’를 통해 지난 두 달 여간 접수된 관세 상담문의는 3000건을 넘는다. 허 교수는 “관세 전쟁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보호를 위해선 정부가 앞선에 나서 어두운 터널을 밝히는 불빛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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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교수가 최근 발표한 ‘정부 지출의 GDP 효과 분석’ 논문에서도 정부 지출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인 경기 변동 대응책이라고 분석됐다. 정부가 돈을 풀면 가계 지출이 증가하고 실업률 하락, 고용률 상승 등 노동시장 지표가 개선되면서 단기적으로 GDP가 상당 폭 늘어난다는 해석이다.
허 교수는 “추경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지출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출은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면서 “지난 정부는 돈을 빌려주는 금융정책만 집중하다가 인플레이션이 오르고, 금리도 따라 오르다 보니 정책 지원이 무색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필수 추경 외 추가 추경에 대해선 신중론을 펼쳤다. 허 교수는 “추경 자체가 만성화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이라면서 “차기 정부 들어오자마자 2분기 성장률이 나오는데 그 수치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새 정부가 본예산을 통해 정책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은이 현 시점에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필요성이 보다 강해졌다는 시각도 나온다. 시장에선 이미 5월 기준금리 인하 컨센서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이와 관련 허 교수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가 대선 전에 이뤄지지만 정치적인 요소와 별개로 금리 인하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면서 ‘다만 원화 약세 시대에 접어든 이 시기에 환율 변동성은 한은이 금리를 인하하는 데 있어 최종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한은 총재 입장에서는 새 정부가 재정 대응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더 큰 만큼, 정책 코디네이션 관점에서 통화정책을 보수적으로 끌고 갈 여지가 있다. 올해 최종 금리 인하 폭이 예상보다 크진 않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