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수사권 없는 기관의 피의자 체포 구속이 이뤄졌고 불법 구금 문제가 있었다”며 “법률 위배한 경우에 해당되는 만큼 공소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위법수집증거가 증인신문에서 현출되면 안된다. 피고인 방어권 행사에 심각한 지장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공판준비기일을 다시 지정해서 증거조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날 예정한 증인신문을 그대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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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헌법재판소 대통령직 파면 결정으로 자연인 신분이 된 후 열흘 만에 형사재판에 첫 출석한 윤 전 대통령은 검은 양복과 붉은 넥타이를 입은 채 머리를 2대 8 가르마로 정돈한 모습으로 오전 9시50분께 재판정에 들어섰다. 윤 전 대통령은 일반 피고인과 달리 차량에 탄 채 지하주차장을 통해 출석했다. 법원이 청사방호 차원에서 윤 전 대통령 측 요청을 허용하면서다.
이날 재판은 검찰 측의 약 1시간 분량 프리젠테이션(PPT) 모두진술 발표와 윤 전 대통령 측 입장 발표로 진행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일반 형사 피고인과는 사뭇 다르게 변호인 측에 주어진 약 2시간가량의 모두진술 시간 중 거의 대부분인 93분 동안 직접 항변을 이어갔다.
검찰 측은 내란죄 구성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 여부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공범들과 비상계엄을 사전에 모의했고 헌법과 법률의 기능 소멸을 목적으로 이를 선포했다는 주장이다. 형법 제87조에 따르면 내란죄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규정한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 측 PPT 자료를 한장 한장 넘겨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비폭력적으로 국회의 해제요구를 즉각 수용해서 해제한 몇 시간의 사건을 내란으로 구성한 것 자체가 법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야당의 주요 예산 삭감, 감사원장 탄핵 등을 언급하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가진 헌법상의 비상조치 계엄선포라는 것을 통해서 주권자, 권력자 국민에게 확실하게 알리고 직접 나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조치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군정 쿠데타와 비상계엄은 다른 것”이라며 “계엄 선포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재판에서 총 42분간 발언한 윤 전 대통령은 오후 재판에서도 총 51분간 발언을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발언 시간이 길어지자 재판부는 검찰 측과의 형평성을 위해 5분 내에 발언을 정리해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모두진술이 피고인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권리인 만큼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호소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6년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치열하게 공직생활을 했다”며 “정말 많은 사람을 구속하고 기소했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가) 어떤 논리에 의해 내란죄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재차 혐의를 부인했다.
이후 검찰 측이 신청한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조 단장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기일에 출석해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내부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핵심 증언을 한 인물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내란 공범 피의자인 조 단장의 진술 조서는 형사소송법상 증거 능력이 없다’며 추후 증거기록이 정리된 후 증인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에서 증거 출처를 알려주고 변호인 의견을 밝혀주면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증인신문을 이어갔다.
한편 법원은 오는 21일 오전 10시 2차 공판기일을 열고 이날 출석한 증인들에 대한 변호인 측 반대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