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지키면 공정거래법 위반?…방통위 ‘당혹’
12일 방통위 안팎에 따르면, 지난달 26일과 5일에 열린 공정거래위원회의 두 차례 전원회의에는 방송통신위원회 천지현 시장조사심의관과 조주연 조사기획총괄과장이 참석해, 이통 3사의 번호이동 순증감 수 조정은 담합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이통 3사가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번호이동 순증감 수가 특정 사업자에게 편중되지 않도록 상호 조정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행한 행위를 문제삼고 있다. 이통 3사는 방통위의 부당한 이용자 차별 방지 정책에 따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시장상황반을 운영하며 매일 한 장소에 모여 순증감 수치를 공유하고, 특정 사업자의 순증가 또는 순감소가 두드러지면 상호 간의 협의를 통해 판매장려금을 인상 또는 인하하는 방식으로 번호이동 순증감 건수 조정 합의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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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통 3사는 번호이동 순증감 수 공유와 상황반 운영이 방통위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가 번호이동 순증감 조정을 지시한 증거도 제출했지만 공정위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단통법에 근거한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단통법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방통위와 이통 3사, KAIT가 담합에 동조했다고 주장하자, 천지현 방통위 국장이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원회의 참석자는 “공정위가 방통위의 통신 시장 안정화 및 소비자 혜택 확대 정책을 부정하자 방통위 공무원들이 울분을 토했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단말기 할인 혜택이 일부 소비자에게만 집중되고, 제값을 주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통법을 시행했으며, 이 법이 시장 안정화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방통위는 단통법 시행 이후 이통 3사에 대해 총 12번의 제재를 통해 15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적극적으로 법을 집행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도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기업들이 법을 준수해왔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통신사들의 행위가 과도하게 단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통 3사에 총 11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방통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조사 과정에서 7번에 걸쳐 방통위와 실무 협의를 진행했으며, 방통위의 의견은 합의 과정에 충실히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단통법 위반으로 방통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상황에서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이 이중규제라는 지적에 대해선 “방통위는 과도한 차별적 장려금 지급에 대해 제재했으며, 공정위는 이통 3사가 방통위 행정지도를 벗어나 번호이동 순증감 수를 조정·합의한 부분을 담합으로 간주했다”고 답변했다.
이통 3사는 공정위의 제재에 불복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단통법을 준수했을 뿐 담합은 없었으며, 향후 소송을 통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규제 기관 간의 충돌로 인해 불합리한 규제를 받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통위의 지시가 단순한 행정지도가 아닌 강력한 법 집행이었고, 번호이동 순증감 수 조정이 방통위의 법 집행에 따른 것이라 담합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부처 간 규제 충돌 늘어…교통정리 필요
현재도 플랫폼 규제와 관련된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지배적 플랫폼’에 해당하는 기업이 자사 우대 행위나 멀티호밍 제한 행위 등을 금지할 방침이다. 반면, 과기정통부는 원칙적으로 플랫폼에 대한 자율 규제가 적합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방통위는 플랫폼에 대해 이용자 보호를 위한 규제(한국판 DSA법)를 추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정위의 일반적인 경쟁 규제 기준이 산업 주무부처의 정책과 충돌하고 있다.
또한, 단통법 폐지에 따른 후속 조치에서도 공정위와 방통위 간 충돌이 예상된다. 방통위는 단통법 폐지 이후 전기통신사업법을 통해 현저한 차별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러한 규제가 지원금 경쟁을 제한한다고 보고 있어, 단통법 폐지이후에도 담합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 간 엇박자로 인해 기업들은 이중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방통위와 과기정통부의 지침을 따르다 보면 공정위의 제재를 받을 수 있고, 공정위의 눈치를 보게 되면 방통위와 과기정통부의 제재를 받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앞으로 이통사뿐만 아니라 빅테크와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 등 ICT 기업을 둘러싼 여러 부처의 관여가 지속될 것”이라면서 “관계 부처 간 규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조율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