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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화재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아파트 입구에서 모여 당국의 진압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출근 시간대 난 불로 이들은 별다른 짐을 챙기지 못한 채 다급하게 뛰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고령의 대피자들은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자식들의 전화를 받으며 상황을 전달하고 있었다. 화재가 모두 진압됐지만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러 주민들은 나눠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불이 난 동 1층에 사는 40대 오모씨는 갑작스레 밀려 들어오는 연기에 깜짝 놀라 대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연기가 마구 쏟아져서 몸만 챙겨 빠져나왔다”며 “화단에 어떤 사람이 매달려서 살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도 전했다.
고층에 사는 주민들은 연기가 자욱한 계단으로 뛰어 내려오던 상황을 전했다. 10층에 사는 이모(25), 이모(20)씨는 “갑자기 뭐가 터지는 소리가 나 창문을 보니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며 “집과 가까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려고 했는데 다른 주민들도 너무 많았고 연기도 자욱해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다른 층으로 뛰어 내려왔다”고 했다. 방에서 자다가 대피했다는 이들 자매는 별다른 짐도 없이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피했다고 말했다. 12층에 사는 고령의 주민은 “아무것도 모르고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놀라서 진정이 안 된다”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불이 난 동 맞은 편에서도 큰 소리에 놀라 뛰쳐나온 이들이 있었다. 박모(40)씨는 “아이를 등원시키려고 하고 있었는데 창문 쪽에서 연기가 너무 자욱하기에 뭔가 했더니 불이 나고 있었다”며 “아파트 1호 라인과 4호 라인에서 함께 불이 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화재는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A씨가 토치 형태의 농약 살포기를 이용해 아파트 4층에서 불을 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해 남성을 특정했다. 이 남성은 화재 현장에서 사망한 인물과 동일인인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