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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정부효율부(DOGE)는 현재 ‘골드 카드’ 특별이민 비자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비자 심사 인터뷰와 신상 조사 등을 포함한 복잡한 영주권 취득 절차를 간소화해 신청 후 2주 이내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 기자들에게 실물로 제작된 골드카드를 보여주며 “2주 안에 출시할 것”이라고 예고한 데 따른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기존 투자이민(EB-5) 제도를 없애고 500만달러(약 71억원)를 내면 영주권을 지급하는 ‘골든 비자’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투자이민이 복잡하고, 저평가돼 있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며, 자신이 발급할 수 있는 골드 카드 100만장을 판매해 5조달러(약 7100조원)를 조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는 “일부 외국인은 더 빠르고 쉬운 비자 절차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낼 의향이 있겠지만, 100만명의 슈퍼 리치를 기대하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은 전 세계적으로 카드를 구매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3700만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적인 투자이민 업계 기준에 따르면 고객들은 자산의 10% 이상을 비자에 쓰지 않는 게 좋다고 간주한다. 즉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500만달러를 내려면 자산이 최소 5000만달러(약 71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슈퍼 리치는 전 세계적으로 약 10만명에 불과하며, 이미 대다수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아울러 기존 EB-5 제도와 달리 투자를 회수할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하워드 루트닉 미 상무장관은 카드 판매 금액은 부채 상환에 사용할 것이라고 시사했는데, 이는 사실상 기부를 하라는 의미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5조달러는 미국 부채(올해 2월 기준 36조 2189억달러)의 약 7분의 1을 상환할 수 있는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EB-5가 너무 싸게 팔리는 데다, 국가 재정보다는 부동산 업계에 혜택이 집중된 구조라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EB-5는 80만달러부터 시작하며, 10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투자는 대부분 저이율의 부동산 대출 형태로 이뤄진다. 옥스퍼드대의 마들렌 섬션 교수는 “EB-5 투자자들은 보통 연 0.5~1%인 시장 이하의 수익률을 비자를 얻기 위한 대가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EB-5 폐지는 중국 이민자 유입을 제한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파악된다. EB-5 수요 대부분이 인도와 중국에서 발생한다. 연간 발급이 1만개로 제한되고 국가별 할당제가 있어 인도와 중국 신청자들은 최장 10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해외 소득에 대한 세금을 면제 해준다면 수요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들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 자명하며, 의회에서 관련 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낮다는 분석이다.
또한 슈퍼 리치 입장에선 더 적은 돈을 쓰고 편하게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많다. E-2 비자(미국 기업에 투자)와 L-1 비자(자회사 설립 후 관리자 파견) 등이 대표 사례다. EB-5도 2027년까지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수십만명의 백만장자들이 수백만달러의 비자 비용과 높은 세금까지 감수하면서 미국 비자를 사겠다는 전망은 비현실적”이라며 “연간 수천명이 신청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현재 상황이라면 오히려 미국 내 슈퍼 리치가 다른 나라로 떠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뉴욕에서 근무하는 영국계 변호사인 모나 샤는 “최근 해외 골든 비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경제를 망치면 이민을 생각하는 미국인이 더 많아질 것이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