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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 가격이 즉각적인 원재료비 급등으로 직결되는 페인트 업계는 지난달 중순 부터 순차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원가가 뛰어 가격을 조정했을 뿐인데 돌연 정부가 조사에 돌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30일 KCC, 노루페인트, 삼화페인트공업, 강남제비스코, 조광페인트 등 페인트업체 5개 본사와 업계 이익단체인 한국페인트·잉크공업협동조합 사무소에 조사관을 보내 담합 혐의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결국 공정위가 조사관을 파견한 지 이틀 만에 KCC는 가격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건자재·인테리어 업계는 눈치만 보는 중이다. 창호·배관·바닥재 등 제조 전반이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상황에서 가격이 올라 수급이 불안정 하지만 쉽사리 가격을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페인트 업계 처럼 정부에서 조사를 진행하며 압박할까 두려워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현재 가진 재고로만 버텨야 하는데 대형 기업들은 그나마 재고가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당장 한달치 재고도 없어 제조 공장이 멈추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국내에서 생산이 안되면 해외에서라도 원료를 수급해 제품을 생산 할텐데 이미 가격이 오른 원료를 해외에서 비싸게 사와 국내에서는 가격을 못올리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이처럼 정부가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 충격을 국내 가격 억제로 막아보려 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가격은 시장의 언어이자 신호다. 원자재가 오르면 판매가도 조정되고, 그 가격 변화를 통해 수요는 둔화되거나 공급이 확충된다. 그런데 정부가 가격을 억누르면 이 신호 체계가 무너진다. 공급은 막히고, 재고가 소진되는 동안 필연적으로 품귀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품귀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인상 부담을 고스란히 기업만 떠안아야 하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정책 의지로 글로벌 가격 인상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가. 상황이 장기화 된다면 인위적으로 붙잡아 둔 가격보다 훨씬 높은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바둑에서 자기가 놓은 돌로 자기의 수를 줄이는 일을 ‘자충수’라 한다. 스스로 한 행동이 나중에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망 불안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물가를 이유로 판매가 인상을 억제하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정책은 더 큰 반작용으로 돌아오는 ‘자충수’를 두는 것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미국은 급등하는 유가를 억제하기 위해 가격 통제에 나섰지만, 결과는 주유소 앞 긴 줄과 연료 부족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격을 억누르는 정책이 아니라 공급을 풀어주는 접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원자재 수급을 안정시키고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현재 사태를 해결하는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