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부는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추가한 것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미 정부 관계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며 “한미 간 에너지, 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 교섭해 나갈 것”이라고 지난 15일 밝혔다.
SCL은 미국 에너지부가 국가 안보나 핵 비확산, 역내 불안 등의 이유로 특별히 고려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가들이다. 중국과 북한, 이란, 러시아 등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들이 SCL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통상 SCL로 지정되면 해당 국가 출신 연구자는 에너지부 산하 시설에서 근무하거나 관련 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더 엄격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미 에너지부는 바이든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직전인 올 1월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하기로 했다. 이 결정은 다음달 15일부터 발효할 전망이다.
미 에너지부는 한국의 SCL 추가에 대해 “한국과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SCL 추가가 발효한 후 최근 한·미 간 협력이 깊어지고 있는 AI나 원자력, 우주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협력 절차가 더 까다로워질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韓에 입 닫은 美…정부는 ‘상황 파악’ 늦장
기자 Pick
정부는 미국이 한국을 SCL에 추가한 이유도 아직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미국이 한국을 SCL에 추가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뒤이은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며 “한국은 당시 그리고 현재에도 심각한 ‘지역 불안정’으로 인해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자체 핵 무장 논의를 SCL 추가 이유로 든다. 대릴 킴볼 미국 군비통제협회 사무총장은 한국을 ‘핵확산 위험 국가’로 부르며 “한국이 핵확산 관련 민감국가로 등재되면 핵무기 생산에 활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미국 승인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나 인도 등 미국의 다른 우방국도 핵확산 우려 때문에 기타 지정 국가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에 정확한 지정 사유 들어야”
민감국가로 지정된 이유를 모르는 탓에 해제할 방법도 못 찾고 있다. 정부는 주미대사관을 중심으로 SCL 지정 해제·철회를 위해 백악관, 국무부, 에너지부 등 미국 측과 물밑 접촉 중이다. 각 부처 차원에서도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조만간 미국을 찾아 고위급 대화에 나설 계획이다.
다만 고위급 대화가 성사된다고 해도 미국이 단기간에 한국의 SCL 지정을 철회하긴 어려울 것이란 게 외교가 우려다. 더욱이 백악관에서 기술 안보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책실장도 아직 공석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추측에 기반해 대응하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왜 한국이 민감국가로 분류됐는지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 채널을 통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정치 불안이나 핵무장론이 SCL 지정 원인이라면 미국 측이 안심할 확약이 해법이 될 수 있다면서도 “공급망과 관련된 미국의 초당파적인 단기적 대외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을 SCL을 지정한 것이라면 문제가 훨씬 복잡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