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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루는 1821년 설립된 국가 보안문서 전문 인쇄업체로, 한때 영국 지폐를 독점적으로 찍어내면서 ‘세계 최대 은행권 인쇄업체’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조폐공사를 비롯한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이 국가 보안 인쇄물을 독점적으로 제작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과거 드라루와 같은 민간 업체에 지폐 인쇄 외주를 맡겨왔다. 지폐 발행과 관련한 모든 통제권은 영란은행에 있었으나 실질적인 지폐 인쇄는 드라루와 같은 민간 업체가 담당했던 것이다.
그런 드라루가 쓰러지기 시작한 시점은 영란은행이 정부 산하 인쇄 시설을 구축해 자체적으로 지폐를 인쇄하기 시작한 2015년부터다. 영란은행은 드라루가 100년 이상 지폐를 찍어온 만큼, 해당 시설을 함께 관리하다가 2020년에는 직접 관리에 나섰다. 드라루 입장에선 100년 이상을 함께 해온 대형 고객과의 계약이 끊긴 셈이다.
매출이 크게 꺾인 드라루는 △세계적인 현금 사용 감소 △높은 부채 △잦은 경영진 교체로 인한 운영 불안정성 △입찰 경쟁력 저하 등의 문제로 더욱이 주저앉았고, 재무건전성을 개선한다는 명목 아래 산하 사업부 매각에 나섰다. 실제 회사는 최근 인증 사업 부문을 미국의 한 기업에 매각했는데, 이를 두고 현지 자본시장에선 ‘신의 한 수’보다는 ‘악수(惡手)’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회사의 핵심 사업을 축소하면서 기업가치(밸류에이션)만 대폭 내려가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기업가치가 바닥을 친 드라루는 결국 영국 인수·합병(M&A) 시장에 등장했고, 아틀라스홀딩스는 여느 경쟁사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드라루가 여전히 세계 140개국의 중앙은행과 정부에 여권 제작과 홀로그램 지폐 설계 등 국가 보안문서 관련 솔루션을 공급하는 만큼, 거버넌스와 재무구조만 개선한다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으로 분석된다.
드라루 측은 “아틀라스홀딩스의 투자로 기술 투자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이 기존의 종이 지폐를 폴리머 소재 지폐로 바꾸고 있는 가운데 드라루도 여기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더 개발하고 관련 인프라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