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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 목숨 앗아간 ‘푄 현상’…기후변화에 봄철 산불 대형·동시다발화

이영민 기자I 2025.03.23 13:47:03

강풍에 불씨 날리면서 축구장 4600개 면적 피해
봄 기온 오르고 강수일수 줄어서 가뭄 빈발
"기후변화로 여름 화재도 늘어 산불 연중화 위험"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울산 울주 등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강한 바람과 매우 건조한 대기로 화재 진압이 어려워지며 전국에 동시 다발 형태로 불이 번졌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어 향후에도 산불 위험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남 산청 대형 산불이 사흘째로 접어든 23일 오전 산청군 시천면 일대가 산불 연기로 가득하다.(사진=뉴스1)


◇낙엽·나무 바짝 말린 ‘푄 현상’…“기온 오르면 바람 거세질 것”

남부지역의 산불이 23일에도 이어지면서 화재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1일 산청군에서 시작한 동시다발 산불로 4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산청과 의성에서는 각각 주택 10동과 24동이 전소했고, 축구장 약 4600개 크기의 산림 3286.11㏊가 불에 탔다.

이번 화재는 봄철 대형 산불을 유발하는 ‘푄 현상’에 의해 빠르게 번졌다. 푄 현상은 산 밑으로 불어 내려간 공기가 산을 넘기 전보다 건조하고 기온이 높아지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선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양간지풍’으로 알려져 있다. 산 정상을 넘어 내려오는 바람은 고온건조할 뿐 아니라 속도가 매우 빨라서 산불 발생 시 불씨를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다. 실제로 2005년 4월 강원 양양지역의 산불이 사흘간 이 바람을 타고 확산해 임야 1161㏊와 낙산사가 소실됐고, 2019년 4월에는 강릉과 삼척, 2023년 11월에는 속초와 고성에 큰 피해를 낳았다.

앞서 성묘객의 실화로 발생한 의성군 산불도 야산 정상부터 초속 5.6m의 강풍을 타고 동쪽으로 번졌다. 지난 20일 기상청은 정례 예보 브리핑에서 한반도 남쪽에 자리 잡은 고기압과 북쪽에 있는 저기압의 기압 차이가 커지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은 바람은 강원 영동과 경북 동해안에 순간 풍속이 시속 90㎞에 달하는 강도로 불었다. 이 고온건조한 바람의 영향으로 이날 오전 9시 대구와 경북의 5개 지자체에는 건조 경보가 발표됐고, 그 밖의 경북 지역과 강원, 충북, 전북 지역에도 건조주의보가 발효됐다.

바람을 강하게 만들던 기압골이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전날 동해안 지역을 따라 발효된 강풍특보가 해제됐다. 하지만 오는 24일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에 순간 풍속 55㎞/h 내외(산지는 70㎞/h 내외)의 강풍이 다시 불어서 남은 불씨가 커질 위험이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산청 지역은 서풍이 강하게 불지 않아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했고 오전에 헬기가 못 뜨는 상황이었다”며 “낮 동안 기온이 오르면 위로 상승하는 난류가 생기고, 산불이 난 곳은 공기가 더 뜨겁기 때문에 바람이 거세게 꺾여 불면서 불씨가 날아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폭우·가뭄 빈발해 여름 산불 증가…“산불, 연중화되고 있다”

산불 위험은 다음 달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봄철 기온이 오르고 강수일수가 줄어들면서 산불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과 국립기상과학원이 낸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9년 동안 봄 기온은 평균 0.26도 올라 사계절 중 가장 큰 변화를 기록했다. 강수일수는 모든 계절이 줄었는데 최근 10년간 봄과 여름에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봄·여름 기온 상승으로 토양과 나무의 수분이 잘 증발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늘어나면서 산불은 대형·동시 다발화되고 있다. 지난달 산림청은 ‘2024년 산불통계 연보’에서 2020년대의 산불 면적이 2010년대보다 7.3배 늘고, 대형산불이 3.7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산불은 봄철(65%)에 집중됐고, 월별로는 3월(38건)에 가장 크게 발생했다. 아울러 4월 청명과 식목일, 5월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에도 최근 10년간 각각 연평균 10.9건, 6.7건씩 산불이 발생해 화재 위험이 꾸준히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심해질 경우 대형 산불 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연구부 부장은 “기후변화 때문에 강수량은 많아지는데 집중 강수형태라 여름에 ‘폭염 가뭄’이란 용어가 등장했다”며 “보통 장마 이후에 비가 많이 왔는데 요즘은 폭염기에 가물고 화재가 잘 발생해 산불이 연중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2000년에 연평균 136일이던 산불 발생일이 2020년에는 161일까지 늘었다”며 “(산불은) 대부분 인위적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단속과 예방 교육을 병행해도 이런 일이 반복돼 안타깝다”고 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기후변화는 산불이 잘 생길 수 있는 기압계에 영향을 준다”며 “장기적으로는 산불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많이 유발하기 때문에 온실효과를 가속하고, 산불이 빈번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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