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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강우는 수증기가 빗방울로 성장하지 못한 구름에 수증기의 응결을 돕는 ‘구름씨’를 뿌려 강수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1946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이 기상조절 기술은 오늘날 전 세계 50개국에서 150개 이상 프로젝트로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강원도 대관령에 구름물리선도센터를 구축하고 2017년 기상항공기 ‘나라호’를 도입해 인공강우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인공강우 연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세계 최초로 구리-스테인리스 구조의 실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로 염화나트륨이나 요오드화은으로 구성된 구름씨는 성분과 크기, 모양에 따라 강수 형태와 시간, 범위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필요에 맞게 구름씨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력을 쌓을 ‘구름물리실험챔버(chamber)’가 매우 중요하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국립기상과학원에는 다양한 온도와 습도, 기압을 실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특수공간인 챔버가 있다. 구리·스테인리스 이중구조로 만들어진 이 챔버는 영하 7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폭넓은 온도와 기압 조건을 만들 수 있어 인공강우 기술을 향상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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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연구논문들은 인공강우가 기존 강수 대비 평균 10% 정도의 증우(增雨)를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공강우가 산불을 당장 진화하긴 어렵지만 이상 기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지역에 미리 인위적으로 눈과 비를 더 만들어서 필요한 수자원을 확보하거나 건조지역의 습도를 조절해 산불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강우 5㎜는 1.1일의 산불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산림청의 연구가 있는데 이를 고려하면 연간 100㎜의 인공 증우량을 끌어낼 경우 약 22일 정도 추가적인 산불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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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연구 성과는 해외 주요국들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립기상과학원은 챔버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4년마다 구름과 강수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이는 국제구름강수학회(ICCP)를 주최했고 지난 2022년엔 독일 카알스루에 기술연구원과 공동연구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태국의 인공강우농업항공국, 미국 노스다코다 주정부와도 업무협약을 맺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원의 구름챔버는 지난달 미국 기상학회의 유명 학술지인 BAMS(Bulletin of 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에 소개되기도 했다.
챔버에서 연구된 기술은 순수과학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인공강우 연구에 나선 미국은 △수자원 확보 △우박 억제 △농업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해 10개 주에서 인공강우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중국도 산불과 예방과 생태 보호를 위해 막대한 예산뿐 아니라 항공기·대포 등을 투입해 인공강우 체계를 꾸준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산불, 가뭄 등 자연재해가 증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인공강우 기술은 한국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관측 장비의 성능을 바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챔버 기술은 기상산업 분야에서 민간 사업체의 기술력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첨단 연구시설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챔버는 그 노력의 중심에 있다. 챔버는 우리나라 기상과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연 국립기상과학원장 △1965년생 △연세대 대기과학과 학사 △연세대 대학원 대기과학과 석·박사 △국가기상위성센터 위성분석과장 △기상레이더센터 레이더분석과장 △대전지방기상청장 △기상레이더센터장 △국립기상과학원장(2023년 10월~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