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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로 찌르는 고통…자폐인에 공감과 위로를[기고]

이지현 기자I 2025.04.02 05:22:07

오늘은 UN지정 세계 자폐인의 날
예민한 감각에 스스로도 고통
엄마 안고 싶어도 다가가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영환] “엄마와 선생님들은 내가 왜 비명을 지르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박영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남들과는 아주 다른 감각적 인지적 특성을 가지고 자폐스펙트럼장애로 태어나 동물복지전문가가 된 ‘템플 그랜딘’은 세상에 ‘자폐아’의 경험이 어땠는지에 대해 이같이 직접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 100명 중 약 1명이 자폐증 진단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기준 국내 자폐스펙트럼장애 등록 인구는 3만 1000명으로 10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자폐증을 말하는 Autism(오티즘)의 어원에는 ‘자기’라는 뜻은 있지만 ‘자폐’라는 뜻은 없음에도,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이 평균적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어서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오해를 받는다.

그들의 부모들조차 오랜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내기 전에는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폐아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는 기능이 부족하여 엄마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도 정작 안아주면 예민한 감각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은 헤어드라이어 소리에 겁을 먹고, 토닥여 주기만 해도 짜증을 내며, 엄마가 옆에 있어도 선풍기만 뚫어지게 보는 것이다.

정신의학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20세기 중반까지 자폐인들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었고 레오 카너 박사가 그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유아기 자폐증’이란 진단을 처음으로 붙인 1943년 이후에도 사회는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했다. 심지어 한때 정신의학계는 자폐의 원인을 냉정한 양육 탓이라고 하여 그렇지 않아도 고통스러운 부모들을 더욱더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

20세기 후반 행동주의, 신경과학, 유전학의 발전으로 자폐 원인이 선천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격리와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관심과 격려이며 평균적 세상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는 언어적, 행동적 기술의 습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발전에는 의사나 정신건강 전문가의 노력뿐 아니라 자폐아의 부모들의 헌신과 용기가 있었다. 마침내 세상은 자폐인들도 평균적인 사람들과 같이 기쁨, 슬픔,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자폐인’들은 세상에서 토막 난 말들과 특이한 반복 행동을 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나가고 있다. 혹시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달라.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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