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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바로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대통령이다. 그는 1946년 대선에서 국가 주도의 산업화, 복지 확대, 반엘리트 정서를 내세워 당선됐다. 그러나 1955년 쿠데타로 축출되기 전까지 그가 휘두른 포퓰리즘 정책은 엄청난 재정적자, 감당하기 힘든 물가상승, 산업경쟁력 약화, 외국자본 철수, 국유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외환위기 등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당시 세계 10위권이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오늘날 70위권으로 추락했다. 한 번 무너진 경제와 사회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1998년 대선에서 석유 자원을 활용한 복지확대, 무상의료 등 ‘21세기 사회주의’를 앞세워 집권했다. 이후 2013년까지의 집권 기간과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까지 이어진 포퓰리즘 정책은 국가 붕괴를 초래했다. 2018년엔 물가상승률이 170만%에 이르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2022년 기준 GDP는 2013년 대비 80% 가까이 감소했다. 빈곤율은 94%에 달했으며 2023년 기준으로 700만 명 이상이 해외로 탈출했다.
최근에는 좌파뿐 아니라 우파 포퓰리즘도 경계 대상이 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반이민, 반유럽연합(EU), 자국 우선주의 공약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미국 역시 트럼프 재선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효과적으로 견제됐다. 프랑스의 마린 르 펜은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서 결선까지 진출했지만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전통 좌·우파의 연합, 언론과 시민사회의 검증으로 낙선했다. 독일에서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주류 정당들이 일관되게 연정에서 배제하며 ‘방어적 민주주의’ 원칙을 실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우리 대선은 포퓰리즘의 유혹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첫째,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40개 법안 중 특히 경제와 관련된 것들이 시행됐을 경우 어떤 상황이 생길 것인지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쌀강제매입법)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규정하는데 시장수급 원칙 훼손 및 예산낭비 우려로 거부권이 행사됐다. 노란봉투법으로 일컬어지는 노동조합법 개정은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억제한 것인데 사용자 재산권 침해와 파업 조장 가능성으로 저지됐다. 상법 개정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가져올 소송 남발과 기업 경영 위축 우려로 무산됐다. 이른바 ‘25만원법’ 그리고 ‘지역화폐법’ 등과 같이 지나치게 재정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들도 거부권 행사로 저지됐다. 그래서 이들 법안이 시행될 경우 물가, 재정, 주가, 성장 등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이번 선거기간 동안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둘째, 이른바 ‘공약가계부’를 만들어 공약을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1년 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썼던 ‘공약 감별법’(2024년 3월 28일 자) 칼럼에서 2012년 선보였던 ‘공약가계부’를 부활할 것을 제안했었다. 발표하는 공약은 반드시 재원 소요와 재원 조달 방법을 국민에게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선거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공약가계부가 이행되는지 검증하라는 것이다.
셋째, 정책과 예산을 감시할 공적·사적 감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영국은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을 시작해 공약의 수치화, 이행 가능성, 재정계획, 사후평가를 중시했고 예산책임청(OBR)이 이를 검증했다. 미국의 의회예산국(CBO), 호주의 예산사무국(PBO), 프랑스의 헌법재정책임위원회 등도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 한국의 국회예산정책처(NABO) 역시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국회예산정책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등 민관 협업체제를 구축해 공약을 철저히 그리고 끝까지 검증해야 한다.
선거에서 거짓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국민과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다. 공약뿐만 아니라 후보들의 주요 발언과 약속을 기록하고 서명하도록 한 뒤 선거 이후 그 이행 여부를 추적하는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선거와 정치에서 거짓말은 그 대상이 모든 국민 나아가 국가와 역사가 된다는 점에서 사전에는 철저히 못 하도록 하고 사후에는 철저히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이 그간 숨 가쁘게 달려온 성장궤도에서 이탈해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를 시점에 치러진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만든 우리 기업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진정 성장 궤도로 다시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공약과 발언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