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내란죄의 수사권 다툼이었다. 형법에 버젓이 규정된 내란죄지만 설마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에 의한 내란죄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2021년에 만들어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범위에 대통령의 내란죄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대신 공수처는 수사권이 있는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서 내란죄를 수사하겠다고 했고 윤 전 대통령 측에서는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는 기소되지 않는 형사 불소추 특권이 있는데 기소할 수 없는 범죄를 가지고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맞섰다. 이 법리 다툼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며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이 취소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체포 적부심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두고 제외되는 기간을 ‘시간’으로 할 것인지 ‘날’로 할 것인지에 관해 또다시 다툼이 벌어졌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시간으로 계산한 것과 검찰이 즉시항고를 포기한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사상 초유의 상황으로 벌어진 법리 다툼은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하자 과연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는 소극적 현상 유지에 불과한지 아니면 대통령의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논란이 벌어졌다. 결국 한 권한대행까지 탄핵 소추되며 헌법상 권한대행 2순위인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다시 발생했는데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을 두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 소추할 때는 재적의원 3분의 2라는 대통령의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를 요하는 것 아니냐는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결국 권한쟁의 심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8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으로 남겨진 2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전격 지명하면서 월권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 모든 끊임없는 혼란과 다툼의 원인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에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법이란 것은 태생적으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기에 모든 상황과 경우의 수를 상정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법에는 항상 현실과의 공백이 존재하고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해석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측 범위를 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기존의 상식과 해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연달아 생겨난 것이다.
인간이 가장 크게 느끼는 불안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이 지속하면 무력감과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사회적 혼란을 막고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법과 규율이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법을 수호해야 하는 이들이 전례 없이 법을 부숴버리거나 법의 공백을 교묘히 이용해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 불신은 누구에게 해소를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