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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상장해봤자"…유럽 증시 상장 기피에 '회수 비상'

김연지 기자I 2025.03.13 11:06:20

[유럽 세컨더리 큰장]①
유럽 기업들 IPO시 자국보다 美 증시 선호
작년 IPO한 곳 중 15.3%는 비유럽권 국가 택해
엑시트 침체에 유럽 일부 투자사들은 우려↑
자금 회수 비상에 일부 투자사는 펀딩 올스톱

[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유럽 증시 사정이 많이 변해서…전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상장을 택하는 유럽 기업이 늘어난 가운데 최근 만난 현지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 2021년 성장 가능성 하나만 보고 스타트업에 두루 투자한 유럽 투자사들이 기업공개(IPO)로는 더이상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졌다고 푸념했다.

유럽에서 IPO를 하는 유럽 기업 수가 줄어들고 있다. 영국 런던을 비롯한 유럽 몇몇 국가의 증권시장에서 유동성이 크게 감소하자 기업들은 거래량이 뛰어난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관련 요건을 맞추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회수 시점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투자 전략을 바꿔 잡아야 하는 투자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배경이다.

지난해 IPO를 진행한 유럽 기업 중 15.3%는 미국을 비롯한 비유럽권 국가에, 나머지는 자국 증시를 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 IPO 침체…유동성에 美찾는 기업 대폭 증가

12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IPO(유럽과 비유럽권 모두 포함)를 진행한 유럽 기업은 총 183곳이다. 이는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 2021년에 비해 83% 감소한 수준이며, 최근 10년 만의 최저치이기도 하다. 최근 10년간 IPO에 나선 유럽 기업 수는 평균 461곳을 기록했다. 여타 증권시장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의 이슈가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증시 유동성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가 살짝 달라진다. IPO 시장이 회복되기 시작한 일부 국가와 달리 유럽은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지난해 IPO를 진행한 유럽 기업 중 15.3%는 미국을 비롯한 비유럽권 국가를 택했다. 이는 11.2%를 기록한 2023년과 7.1%를 기록한 2022년 규모에서 대폭 늘어난 수준이다. 자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비율이 몇 년 사이 감소한 셈이다.

지난 10년간 IPO를 진행한 유럽 기업 중 비유럽권 국가에서 진행한 평균 비율은 9%대였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 2021년에는 비유럽권 국가에서 이뤄진 유럽 기업의 IPO 수가 89건으로 많았으나, 유럽권에서 진행된 IPO도 804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유럽 기업들은 비유럽권 국가 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증권시장을 택했다. 유럽 여느 증시 대비 시장 규모가 크고, 거래도 활발하며 명확한 규제를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IPO를 고려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자 풀이 크고,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유동성이 풍부한 곳에 상장할 경우 더 높은 기업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연합(EU)과 각국 법을 따르는 복잡한 IPO 절차를 거치느니 통합된 규제와 명확한 상장 기준을 제시하는 미국에서 고생하자는 인식이 기업들 사이에서 확산했다.

◇ 일부 투자사는 회수에 골머리

지난해 미국에서 상장한 대표적인 유럽 기업으로는 영국 리튬채굴 업체 아카디움리튬과 영국 주택건설 회사 스미스더글라스홈즈, 핀란드 스포츠 장비 및 의류 제조사 에이머스포츠, 룩셈부르크 기반의 헬스케어 기업 아우나 등이 있다.

올해 하반기 혹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IPO를 준비하는 곳도 즐비하다. 이 중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곳은 스웨덴의 핀테크 공룡 클라나로, 회사는 올해 상반기 150억달러(약 21조 8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나스닥 상장에 나선다. 지난해 말 146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클라나는 ‘성장 가능성’에 높은 프리미엄을 쳐주는 미국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목표를 내건 상태다. 이 밖에 클라나의 영국 경쟁사인 ‘질치’는 올해 하반기 혹은 2025년 초를 목표로 미국 상장을 준비 중이다. 현재 회사는 미국 IPO에 맞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문제는 유럽 증시 거래량이 서서히 감소하면서 유럽 기업에 투자한 일부 투자사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지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유럽 투자사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인수·합병(M&A)과 IPO였다”며 “유럽 증시가 회복하지 못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회수 창구였던 IPO 또한 줄어들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상장사였을 때 투자사들이 만들어낸 기업가치가 증시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보니 주춤하는 스타트업이 많다”며 “이에 일부 투자사들은 자금 회수에 비상이 걸렸고, 그 여파는 이들의 미래 펀드레이징까지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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